“성공이 뭔지는 당신이 정하는 것이다. 크게 되려면 많은 도움이 필요하다.”
— 아트 프라이(Art Fry), 공동 발명가, Post-it (3M)
찬송가책 책갈피가 불편했던 아트 프라이는 1974년, 3M 안에서 크게 쓰이지 못하던 스펜서 실버의 접착제를 꺼내 썼다. 1977년 첫 시험 판매는 부진했지만 3M은 포기하지 않았고, 1980년 포스트잇은 전미 시장에 정식 출시됐다.
아트 프라이를 말할 때 빠뜨릴 수 없는 장면
1974년, 아트 프라이는 교회에서 찬송가책을 펼쳤다. 페이지마다 끼워둔 종이 책갈피들이 자꾸 흘러내렸다. 불편했다. 그리고 그 불편함이 질문이 됐다. 붙였다 뗐다 할 수 있는 책갈피를 만들 수 있을까. 그 순간 언젠가 사내 세미나에서 들은 동료 스펜서 실버의 발표가 떠올랐다. 실버는 1968년에 특이한 접착제를 만들었다. 아주 약하게 붙는 접착제였다. 3M은 이 접착제를 어디에 크게 쓸지 한동안 몰랐다. 프라이가 이 접착제로 책갈피를 만들어 보니 처음엔 책갈피를 뗄 때 페이지에 접착제가 묻어났고, 그는 배합을 여러 번 바꿔 자국이 남지 않게 했다.
프라이는 1953년부터 3M에서 일했다. 대학 재학 중 여름 아르바이트로 시작한 것이 거의 사십 년이 됐다. 1955년 미네소타 대학교에서 화학공학 학사를 마쳤고, 그 뒤로도 3M을 떠나지 않았다. 신제품 개발 연구원이었다. 그가 책갈피 아이디어를 실버의 접착제와 연결한 건 3M에서 일을 시작한 지 20년쯤 뒤였다. 1977년 ‘Press ‘n Peel’이라는 이름으로 네 도시에서 시험 판매를 했고, 1978년 아이다호주 보이시에서 이름을 Post-it으로 바꿔 다시 시험 판매를 했다. 이른바 ‘보이시 블리츠’였다. 그리고 1980년, 포스트잇은 정식 출시됐다.
프라이는 1990년대 초 3M에서 은퇴했다. 포스트잇은 그의 개인적 불편함에서 시작됐다. 찬송가 책갈피가 흘러내린 날, 그가 얻은 건 질문 하나였다. 그 질문 덕에 이미 있던 접착제에 쓸 곳이 생겼다.
브랜드 철학 핵심 3가지
해결책보다 질문이 먼저였다
포스트잇은 찬송가책을 펼 때 겪은 불편에서 시작됐다. 책갈피가 자꾸 빠졌고, 프라이는 그게 거슬렸다. 그는 나중에 이 불편에서 나온 아이디어를 사내에 제안했다. 실버의 접착제는 이미 수년 전에 발명돼 있었다. 실버가 사내 세미나에서 알렸고 게시판 제품도 나왔지만, 크게 쓰이지는 못했다. 프라이는 자기 불편함을 그 접착제로 풀 수 있다는 걸 알아챘다. 발명은 흔히 없는 것을 만드는 일처럼 보이지만, 프라이는 회사에 있던 재료로 문제를 풀었다. 문제를 먼저 겪은 사람이 해결책을 알아본다.
출시에 실패해도 포기하지 않았다
1977년 ‘Press ‘n Peel’의 네 도시 시험 판매는 결과가 실망스러웠다. 그런데 3M은 이듬해 아이다호 보이시에서 다시 시도했다. 이번에는 소비자에게 직접 제품을 써 보게 했고, 결과가 달랐다. 프라이의 회고로는 샘플을 받은 사람의 95%가 다시 사겠다고 답했다. 3M은 이 반응을 보고 1980년 본격 출시에 나섰다. 처음 실패한 제품이 세상에 나오기까지 3년이 걸렸다. 그 3년 동안 3M은 포기하지 않고 이름을 Post-it으로 바꾼 뒤 샘플을 나눠 주며 제품을 알렸다.
회사의 문화가 제품을 만들었다
우리는 포스트잇의 성공에서 3M의 문화를 빼놓을 수 없다고 본다. 3M에는 연구원이 업무 시간의 일부를 자유롭게 쓰는 문화가 있었다. 프라이가 교회에서 겪은 불편을 실버의 접착제와 연결할 수 있었던 것도, 회사 안에서 그 접착제 이야기를 나눴기 때문이다.
우리 생각
프라이는 찬송가책을 펴 놓고 아이디어를 얻었다. 사무실도 연구실도 아닌 성가대에서였다. 그는 몇 년 전에 나온 실버의 접착제를 떠올렸다. 이 접착제는 마땅히 쓸 데가 없었다. 세상에는 이런 것들이 꽤 있다. 답은 이미 있는데 질문이 없어서 쓰이지 못한다.
포스트잇이 팔리기 시작한 건 파는 방식이 바뀌면서다. 보이시에서 사람들에게 샘플을 쥐여 주고 직접 써 보게 했고, 써 본 사람은 다시 사겠다고 답했다. 이 이야기에서 중요한 건 먼저 써 보게 했다는 점이다. 한 번이라도 쓴 사람은 그 전으로 돌아가기 어려웠다. 3M이 판 건 습관이었다.
프라이는 포스트잇의 성공을 3M의 문화 덕으로 돌리곤 했다. 겸손한 말 같지만 사실 그대로다. 포스트잇은 실버가 없었으면 안 나왔고, 3M의 문화가 없었으면 안 나왔고, 보이시의 소비자가 없었으면 안 나왔다. 그 모든 것이 제품 하나로 모였다.
불편함을 참는 사람과 불편함을 질문으로 바꾸는 사람의 차이는 크지 않아 보인다. 그런데 그 차이로 결과는 완전히 달라진다. 프라이가 그날 책갈피를 다시 끼워 넣고 넘어갔으면 실버의 접착제가 쓸 곳을 찾을 일도 없었다. 불편함이 질문이 되는 순간이 있다. 그 순간을 그냥 지나치지 않은 사람이 만든 것이 포스트잇이다.
참고 문헌
- Inventor of the Post-it Note on Startups and Entrepreneurs — Lucy Bichakhchyan
- On the Origin of the Post-it Note — Skeptical Inquirer
- Art Fry & Spencer Silver — Lemelson-MIT
- Arthur Fry — Wikipedia
이 글은 공개된 자료와 발언을 바탕으로 소울파파마케팅이 정리했습니다. 소울파파마케팅이 직접 진행한 인터뷰가 아닙니다.
자주 묻는 질문
스펜서 실버의 접착제로 포스트잇을 만들게 된 계기는?
1974년 아트 프라이가 교회에서 찬송가책의 책갈피가 자꾸 떨어지는 불편함을 느꼈을 때, 동료 실버가 1968년에 만든 접착제를 떠올렸다. 아주 약하게 붙는 접착제였고, 프라이는 이 접착제로 책갈피를 만들어 보았다. 처음엔 책갈피를 뗄 때 페이지에 접착제가 묻어나 배합을 여러 번 바꿨다.
첫 출시에 실패한 포스트잇은 어떻게 성공했나?
1977년 ‘Press ‘n Peel’이라는 이름으로 네 도시에서 시험 판매했을 때는 부진했으나, 1978년 아이다호주 보이시에서 이름을 Post-it으로 바꾸고 소비자에게 직접 제품을 써보게 하는 방식으로 다시 시험했다. 프라이의 회고로는 샘플을 받은 사람의 95%가 다시 사겠다고 답했고, 이 결과가 1980년 본격 출시로 이어졌다.
아트 프라이는 스펜서 실버의 접착제를 어떻게 알았나?
3M에는 회사 안에서 신제품과 아이디어를 공유하는 분위기가 있었고, 실버는 사내 세미나로 접착제를 알렸다. 프라이는 1953년부터 약 40년간 3M에서 일한 신제품 개발 연구원이었고, 사내 세미나에서 실버의 접착제 이야기를 들었다.

강현구(Hyun-gu Kang, Brand & Marketing Director) 소울파파마케팅은 24년도 상반기 1,000억 매출을 기록하고 스킨1004로도 유명한, 크레이버코퍼레이션의 글로벌 K-뷰티 플랫폼 ‘UMMA‘, ‘이데넬‘ 을 비롯해, 올리브영 입점 중인 ‘이퀄베리‘, ‘플르부아‘, ‘셀비엔‘, ‘에이피엘비‘, 다이어트 브랜드 ‘라누보‘, ‘닥터디엣‘, 키즈 브랜드 ‘피카부‘, ‘미래홍삼‘, 애견 관련 ‘멀로‘, ‘초코펫하우스‘, ‘옵스틴‘, 골프웨어 링스로 유명한 엘엑스컴퍼니의 ‘V12‘, 여성 언더웨어 ‘쿠프‘, 30년 전통의 ‘강화도령화문석‘ 등의 수 많은 프리미엄 브랜드와 함께해 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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