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논(Danone) 에마뉘엘 파베르(Emmanuel Faber) 전 CEO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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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마뉘엘 파베르 (Danone) 프로필 — CEO 브랜드 철학 | 소울파파마케팅

“금요일에는 죽어가는 사람 곁에 앉았다. 월요일에는 그들을 병들게 하는 시스템으로 돌아왔다.”

— 에마뉘엘 파베르(Emmanuel Faber), 전 CEO, Danone

도구만 있고 왜가 없었다

Emmanuel Faber는 1986년 HEC Paris를 졸업했다. 프랑스에서 가장 좋은 경영대학원이다. 그는 거기서 강력한 도구들을 받았다. 재무 모델, 전략 프레임워크, 분석 언어. 경영자가 되는 데 필요한 것들이었다.

그런데 한 가지가 없었다. “왜”가 없었다.

수업은 기업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가르쳤다. 기업이 왜 존재해야 하는지는 가르치지 않았다. 암묵적 전제가 하나 있었다. 기업의 목적은 이익 극대화다. 나머지는 수단이다. 이 명제는 수업 안에서 의심받지 않았다.

Faber는 혼자 채웠다. 칸트를 읽었다. 레비나스를 읽었다.

레비나스의 명제는 단순했다. 윤리는 원칙에서 시작하지 않는다. 규칙이나 법에서 시작하지도 않는다. 눈앞에 있는 타인의 얼굴에서 시작한다. 그 얼굴이 나에게 요구한다. 외면하지 말라고. 그 요구를 받아들이는 것이 윤리의 전부다.

20대의 Faber는 이것을 이해했다. 머릿속으로만. 언어는 생겼다. 그런데 언어만으로는 아직 아무것도 아니다.

33세, 떠나려 했다

HEC를 나온 후 Bain & Company에 들어갔다. 1년 만에 나왔다. Baring Brothers 투자은행으로 갔다. 5년을 거기서 보냈다. 국제 금융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내부에서 봤다. 돈이 어떻게 흐르고, 그 흐름이 무엇을 만들어내는지를 봤다. Legris Industries로 옮겨 CFO를 거쳐 CEO가 됐다. 빠르게 올라갔다.

33세에 멈췄다.

떠나려 했다. 이 세계가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인지 확신이 없었다. 도구는 있었다. 능력도 있었다. 그런데 “왜 여기 있는가”라는 질문에 답이 없었다. HEC가 가르쳐주지 않은 그 질문이 정면으로 왔다.

그 시점에 신앙을 되찾았다. 결혼이 계기였다. 가톨릭 신앙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프란치스코를 만났다.

프란치스코의 삶이 레비나스 철학을 다시 깨우치게 했다.

13세기 이탈리아 사람이다. 부유한 상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전쟁에 나갔다가 포로로 잡혔다. 병에 걸려 돌아왔다. 아버지의 사업을 이을 수 있었다. 편하게 살 수 있었다.

어느 날 길에서 나병 환자를 만났다. 평생 혐오했던 존재였다. 그 순간 무언가가 깨졌다. 말에서 내려 그 사람을 안았다. 그리고 모든 게 바뀌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가장 버려진 사람들 안으로 들어갔다. 수도원에 숨지 않았다. 세상 한가운데로 갔다.

Faber가 프란치스코의 삶에서 본 것이 거기 있었다. 나병 환자를 외면하지 않고 안은 순간 — 그것이 레비나스가 언어로 말한 것이었다. 타인의 얼굴을 외면하지 않는 것. 철학자는 글로 썼고, 수도사는 행동으로 살았다. 둘이 가리키는 곳은 같았다. 20대에 머릿속에만 있던 언어가 살아있는 것이 됐다.

그리고 프란치스코는 혐오스러운 현실에서 떠나지 않았다. 더 깊이 들어갔다. 거기서 자유를 얻었다. Faber에게 비즈니스 세계가 그 자리였다. 떠나는 것이 아니라 들어가는 것이었다. 외면하지 않는 방식으로 버티기로 했다.

몸으로, 직접 경험했다.

그 결심이 행동으로 나왔다.

델리로 갔다. 마더 테레사가 설립한 임종 돌봄 센터에서 봉사했다. 두 차례, 각각 1주일씩. 치료하는 곳이 아니었다. 길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을 데려와 마지막 시간을 함께하는 곳이었다. 그냥 곁에 있는 곳이었다.

파리 외곽 퓌토의 호스피스로도 갔다. 완화의료 병동이다. 매주 금요일, 2년 동안 거기서 시간을 보냈다. 다논 부회장이었다. 바쁜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2년 동안 한 번도 빠지지 않았다.

두 곳 모두 하는 일은 같았다. 아무것도 고치지 않았다. 그냥 옆에 앉았다. 이야기를 들었다. 죽음 앞에서 사람이 어떤 얼굴을 하는지를 봤다.

레비나스가 말한 타인의 얼굴이 실제 얼굴로 왔다. 이름도 몰랐다. 언어도 통하지 않았다. 고칠 수도 없었다. 그런데 그 얼굴이 분명히 무언가를 요구하고 있었다. 외면하지 말라고.

언어는 20대에 있었다. 프란치스코가 버티게 했고, 봉사가 그 언어를 몸 안에 심었다. 더 이상 이론이 아니었다. 감각이 됐다. 외면하지 않기로 한 사람이 됐다.

월요일의 문제

금요일의 얼굴들을 보고 월요일에 다논으로 돌아왔다.

전 세계 20억 명이 과체중이다. 7억 명이 당뇨를 앓는다. 식품 회사들이 만든 결과였다. 초가공식품이 시장을 장악했다. 설탕과 인공첨가물이 저렴하고 맛있는 제품을 만드는 가장 빠른 방법이었다. 소비자는 샀다. 회사는 이익을 냈다. 사람들은 천천히 병들었다.

금요일에 죽어가는 사람의 얼굴을 보고 온 사람이 월요일에 그 구조의 한가운데 서 있었다. 외면하지 않기로 한 사람에게 이 간극은 외면할 수 있는 크기가 아니었다. 답을 찾아야 했다.

방글라데시에서 확인한 것

무함마드 유누스를 만났다. 2006년 노벨평화상 수상자다. 담보 없이 극빈층에게 소액을 빌려준 사람이다. 시스템이 배제한 사람들에게 시스템의 도구를 돌려줬다.

Faber는 유누스와 함께 Grameen-Danone Foods를 만들었다. 방글라데시 극빈층 아동을 위한 영양 강화 야쿠르트였다. 빈곤층 여성들이 직접 마을을 돌며 판매했다. 수익의 일부가 그 여성들에게 돌아갔다.

이론이 실제로 작동했다. 식품이 직접 사람을 살렸다. 비즈니스가 고통의 원인이 아니라 해결책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눈으로 봤다. 추상이 아니었다. 방글라데시 아이들의 얼굴을 보고 나온 결론이었다.

CEO가 됐을 때 이미 신념이 있었다

2014년 CEO에 취임했다. 신념은 이미 있었다. 전략은 그것을 실행하는 언어였다.

2017년, 다논의 방향을 하나의 문장으로 재정의했다. “사람의 건강과 지구의 건강은 연결되어 있다.” One Planet. One Health. 전 사업부를 이 기준으로 재편했다. 아동용 제품에서 인공색소와 보존제를 전면 제거했다. 설탕을 30% 줄였다. 식물성 브랜드 WhiteWave를 126억 달러에 인수했다.

탄소 배출량을 주당순이익에 연동하는 지표를 업계 최초로 만들었다. Carbon Adjusted EPS. 재무 성과와 환경 성과를 하나의 숫자로 묶었다. 2019년에는 탄소 감축 목표를 계획보다 6년 앞서 달성했다.

2020년 6월. 주주 99%가 찬성했다. 프랑스 CAC 40 상장사 최초로 ‘사명 중심 기업(Entreprise à Mission)’ 법적 지위를 얻었다. 기업의 목적을 주주 이익 극대화 이외의 것으로 법적으로 정의한 구조다. 프랑스 대기업 역사에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

투표 결과를 받아들고 Faber가 말했다. “밀턴 프리드먼의 동상을 여러분이 오늘 무너뜨렸습니다.”

9개월 후

2021년 3월 15일. 이사회가 Faber를 즉시 해임했다.

99%의 지지로 역사를 썼던 CEO가 9개월 만에 쫓겨났다. 런던계 헤지펀드 Bluebell Capital Partners가 불씨를 당겼다. 보유 지분은 0.5% 미만이었다. 무기는 숫자 하나였다. “Nestlé와 Unilever 대비 주가 수익률 열위.” 이 문장 하나를 공개적으로 반복했다. 단순하고 명확했다. 잠재 불만 주주들이 조용히 결집했다. 이사회는 버티지 않았다.

0.5% 지분이 36조 원 기업의 CEO를 교체했다. 지분의 힘이 아니었다. 내러티브의 힘이었다. 해임 당일 다논 주가가 올랐다.

Faber는 철학을 빼앗긴 게 아니었다. 자리를 빼앗겼다. 신념은 그대로였다. 그는 알프스로 돌아갔다. 그르노블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이었다. 산에서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다시 움직였다.

멈추지 않았다

2022년 1월, ISSB(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 초대 의장으로 취임했다. 40개국의 지속가능성 공시 기준을 설계하는 자리다. 다논에서 Carbon Adjusted EPS로 실험했던 것을 이제 전 세계 기준으로 만드는 일이다.

IFRS S-1과 S-2가 발행됐다. 40개국이 채택을 진행하고 있다. 전 세계 시가총액의 40%를 커버한다. 2023년 2연임이 확정됐다. 쫓겨난 CEO가 글로벌 지속가능성 표준을 쓰고 있다. 자리를 빼앗겼지만 방향은 빼앗기지 않았다.

소울파파마케팅의 시선

대부분의 ESG는 반대 방향에서 온다. 투자자 압박이 오고, 전략이 만들어지고, 보고서가 나오고, 철학이 마지막에 붙는다.

Faber는 달랐다.

HEC에서 “왜”라는 결핍이 생겼다. 레비나스로 언어를 얻었다. 33세에 신앙을 되찾고 프란치스코를 만났다. 프란치스코의 삶이 레비나스의 언어를 살아있는 것으로 다시 깨우쳤다. 나병 환자를 안은 수도사와 타인의 얼굴을 말한 철학자가 같은 곳을 가리키고 있었다. 외면하지 않는 것. 그것이 전부였다.

그 결심으로 델리로 갔고, 호스피스로 갔다. 몸으로 살았다. 방글라데시에서 식품이 그 얼굴을 직접 바꿀 수 있다는 것을 눈으로 봤다. 그 다음에 CEO가 됐다. 이미 신념이 있는 상태로.

전략은 신념을 실행하는 도구였다. 그래서 자리를 잃어도 방향이 바뀌지 않았다.

브랜드는 창업자의 결핍과 극복에서 태어난다. 우리는 그 사람이 가진 결핍의 근원은 알 수 없다. 모른다. 그러나 그 여정의 시작은 HEC였다. 그것을 채우는 과정이 이 사람의 전부였다. 레비나스였고, 프란치스코였고, 호스피스였고, 방글라데시였고, 다논이었다. 해임 이후에도 계속됐다.

소비자가 다논 요거트를 살 때 그 과정을 함께 샀다. 본인이 의식하든 안 하든. 신념이 제품 안에 녹아 있으면 대표자가 자리를 잃어도 브랜드는 남는다.

그게 히어로 브랜드의 구조다.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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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묻는 질문

에마뉘엘 파베르가 33세에 사업 세계를 떠나려고 한 이유는 무엇인가?

도구와 능력은 있었지만 ‘왜 이곳에 있는가’라는 질문에 답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결혼을 계기로 가톨릭 신앙을 되찾았고, 13세기 성 프란치스코가 나병 환자를 안은 순간을 통해 레비나스의 철학을 깨닫습니다. 파베르는 이후 사업 세계를 떠나는 것이 아니라 ‘더 깊이 들어가는 것’으로 결심을 바꾸게 됩니다.

파베르는 Bain & Company와 Baring Brothers 이후 어떤 경력을 거쳤나?

Bain & Company에서 1년, Baring Brothers 투자은행에서 5년을 거친 후 Legris Industries로 옮겨 CFO를 거쳐 CEO가 되었습니다. 국제 금융 내부에서 돈의 흐름과 그것이 만들어내는 결과를 직접 목격했습니다.

다논 부회장 재직 중 파베르가 봉사한 호스피스는 어디이며 무엇을 했나?

델리의 마더 테레사가 설립한 임종 돌봄 센터에서 2회에 걸쳐 각각 1주일씩 봉사했고, 파리 외곽 퓌토의 완화의료 병동에서는 매주 금요일마다 2년 동안 지속적으로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는 아무것도 고치지 않고 단지 옆에 앉아 죽음 앞에 있는 사람들의 얼굴을 직접 경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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