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루넬로 쿠치넬리(Brunello Cucinelli) 브루넬로 쿠치넬리(Brunello Cucinelli) 창업자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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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넬로 쿠치넬리 (Brunello Cucinelli) 프로필 — CEO 브랜드 철학 | 소울파파마케팅

“나는 이윤을 원한다. 윤리적·도덕적으로 하고 싶지만, 이윤은 원한다. 문제는 어떻게 나누는가다.”

— 브루넬로 쿠치넬리(Brunello Cucinelli), 창업자, Brunello Cucinelli

15세, 아버지의 얼굴이 달라졌다

1953년, 브루넬로 쿠치넬리는 이탈리아 움브리아 지방 카스텔 리조네의 소작농 가정에서 태어났다. 집에 전기도 수도도 없었다. 가족은 계절의 리듬에 따라 일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힘들게 일했지만 그 얼굴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그것이 쿠치넬리가 처음 배운 노동의 모습이었다.

그 모습은 가족이 도시로 이사하면서 끝났다. 아버지는 공장 노동자가 됐다. 쿠치넬리는 아버지가 공장에서 돌아올 때의 표정을 기억했다. 농촌에서 일하던 사람의 얼굴이 아니었다. 무언가가 빠져나간 얼굴이었다. 그가 정확히 무엇인지 설명할 수는 없었지만, 사라진 것이 있다는 사실은 알았다.

공장 감독은 아버지에게 소리를 질렀다. 그 장면을 15세 소년이 목격했다. 쿠치넬리는 훗날 이 장면을 반복해서 언급했다. 그 굴욕이 평생의 질문을 만들었다. 도덕적 존엄과 경제적 존엄을 동시에 지킬 수 있는 일이 존재하는가. 그 질문이 먼저였고, 캐시미어는 나중에 왔다.

25세, 50만 리라를 빌려 여섯 벌을 만들었다

쿠치넬리는 엔지니어링 스쿨을 중퇴했다. 1978년, 25세에 친구에게 돈을 빌려 캐시미어 점퍼 여섯 벌을 만들었다. 색은 선명하고 예상 밖이었다. 당시 캐시미어는 베이지와 회색이 지배하던 시장이었다. 그 여섯 벌이 브루넬로 쿠치넬리 브랜드의 시작이었다.

그러나 그가 만들고 싶었던 것은 옷이 아니었다. 아버지가 잃어버린 것을 돌려줄 수 있는 구조였다. 노동이 사람에게서 무언가를 빼앗지 않는 방식으로 회사를 운영하는 것. 그 목표가 먼저 있었고, 캐시미어 점퍼는 그 목표를 실현할 수단으로 선택됐다. 출발점이 제품이 아니라 노동의 조건이었다는 것이 이 브랜드가 다른 이유다.

캐시미어: 아버지를 망가뜨린 논리와 반대편에 있는 소재

아버지를 바꾼 것은 공장이었다. 정확히는 공장의 논리였다. 효율이 먼저이고 인간은 그 다음이라는 구조. 그 구조 안에서 사람은 교체 가능한 부품이 된다. 소년 쿠치넬리가 목격한 것은 그 논리가 한 사람의 표정을 지워가는 과정이었다.

1978년, 그는 캐시미어를 선택했다. 이 소재는 구조적으로 그 논리가 통하지 않는다. 캐시미어 염소는 1년에 한 번만 털을 낸다. 빗질로만 채취한다. 강제로 당기면 섬유가 끊어진다. 한 벌의 스웨터를 만들려면 염소 2~4마리의 1년치 털이 필요하다. 서두를 방법이 없다. 공장의 논리를 적용할 수 없는 소재였다. 자연이 속도를 정한다. 인간이 편의를 위해 소재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소재의 본성이 인간의 속도를 제한한다.

그가 첫 번째로 고른 색은 선명하고 예상 밖의 것들이었다. 당시 이탈리아 캐시미어는 베이지, 크림, 브라운 계열이 주류였다. 쿠치넬리는 여기에 보라, 노랑, 선명한 초록을 입혔다. 소재의 품질에 색이 더해지자 시장이 반응했다. 그러나 그가 색을 선택한 이유는 차별화 전략이 아니었다. 그는 단순히 아름다운 색을 원했다. 아름다운 장소에서 아름다운 것을 만들겠다는 것. 그 생각이 먼저였다.

디자인: 소재가 말하게 두는 것

쿠치넬리의 디자인에는 과장이 없다. 불필요한 장식이 없다. 실루엣은 수십 년째 크게 변하지 않는다. 이것은 미니멀리즘 트렌드를 따른 결과가 아니다. 솔로메오의 중세 건축에서 나온 기준이다. 14세기에 지어진 건물들은 덧붙이지 않았다.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다. 그리고 수백 년을 버텼다.

그는 이 비례감을 옷에 적용했다. 디자인이 튀면 소재가 죽는다. 소재가 살아 있어야 그것을 만든 손이 보인다. 손이 보여야 사람이 보인다. 아버지에게서 빼앗긴 것이 무엇인지 그는 알고 있었다. 공장은 아버지의 손을 부품으로 만들었다. 그의 옷은 손이 부품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방식으로 설계됐다. 장인의 손이 드러나는 옷. 소재가 먼저 말하는 옷.

유행을 따르지 않는다는 것은 결과가 아니라 전제였다. 유행은 속도를 요구한다. 시즌마다 교체를 요구한다. 그 속도 안에서는 소재가 살 수 없고, 장인이 살 수 없다. 5년 후에도 입을 수 있는 옷을 만드는 것은 취향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것이 아버지를 망가뜨린 논리에 저항하는 방식이었다.

솔로메오: 속도를 거부하기 위해 산 마을

1982년, 쿠치넬리는 아내의 고향 솔로메오로 이사했다. 중세 마을이었다. 14세기에 지어진 성을 사들여 회사 본부로 만들었다. 밀라노도 로마도 아니었다. 움브리아의 언덕 위 인구 수백 명짜리 마을이었다.

이 선택은 불편함을 감수한 결정이 아니었다. 도시 공장이 아버지에게서 빼앗은 것이 무엇인지 그는 알고 있었다. 속도, 익명성, 감독의 시선. 솔로메오는 그 반대편에 있었다. 장인들이 성 안에서 일하고, 점심 뒤에 쉬고, 계절의 속도에 맞춰 움직이는 곳. 본사 위치 자체가 이 회사가 무엇을 거부하는지를 물리적으로 보여줬다.

1985년부터 지금까지 브루넬로 쿠치넬리 SpA는 솔로메오에서 운영되고 있다.

마을 도로를 재포장하고, 극장을 짓고, 학교를 세웠다

솔로메오에 정착한 뒤 쿠치넬리가 한 일의 목록은 회사 경영과 무관해 보인다. 마을 도로를 재포장했다. 약 200명을 수용하는 개방형 원형극장 테아트로 쿠치넬리를 건설했다. 장인 기술과 예술을 가르치는 학교를 설립했다. 이 지출들은 브랜드 매출과 직접 연결되지 않는다.

그러나 쿠치넬리에게 이것은 전략이 아니라 기준이었다. 공동체에서 이윤을 얻었다면 공동체에 돌려줘야 한다. 번영에는 의무가 따른다. 그 기준은 아버지가 공장에서 돌아올 때의 얼굴에서 나왔다. 회사가 사람에게서 무언가를 빼앗는 구조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것. 그 결정이 솔로메오의 극장이 되고, 학교가 되고, 재포장된 도로가 됐다.

이 구조가 먼저 만들어졌기 때문에 다음이 가능했다.

임금은 경기와 무관하게 매년 올렸다

쿠치넬리는 솔로메오의 장인들에게 지역 평균보다 높은 임금을 지급했다. 임금 인상은 실적이 좋을 때만 하는 결정이 아니었다. 경기 조건과 무관하게 매년 올렸다. 이것이 브루넬로 쿠치넬리 SpA가 스스로를 ‘인본주의적 기업’ 모델이라고 부르는 근거다.

추상적인 선언이 아니었다. 임금 정책, 근무 환경, 본사 위치 선택으로 구체화됐다. 장인들은 성 안에서 일했다. 오후에 쉬는 시간이 있었다. 감독이 소리를 지르는 구조가 없었다. 아버지가 잃어버린 것을 자기 회사 안에서는 빼앗지 않겠다는 결정이 이 모든 조건을 만들었다.

할인하지 않고, 유통을 통제하고, 4년 연속 두 자릿수로 성장했다

브루넬로 쿠치넬리 SpA는 할인을 하지 않는다. 유통 채널을 무분별하게 늘리지 않는다. 매출의 절반 이상이 직접 운영하는 모노브랜드 리테일에서 나온다. 2012년 밀라노 증권거래소에 상장했고, 2025년 매출은 16억 달러다. 4년 연속 두 자릿수 성장을 기록했다.

이 숫자들은 공격적 성장의 결과가 아니다. 쿠치넬리는 공격적 성장을 선택하지 않는다고 직접 말했다. 더 빨리 더 많이 파는 것보다 어디서 어떻게 파는가를 통제하는 것을 우선에 뒀다. 브랜드의 포지셔닝을 지키는 것이 매출 극대화보다 먼저였다. 철학이 먼저 있었고 숫자는 그 뒤에 따라왔다. 그 순서가 한 번도 뒤집히지 않았다.

쿠치넬리는 스스로를 자본주의자라고 말한다. 이윤을 원한다고 말한다. 단, 그 이윤을 어떻게 나누는가가 문제라고 했다. 그 질문에 대한 그의 답이 솔로메오의 극장이고, 재포장된 도로이고, 매년 오르는 장인의 임금이다.

소울파파마케팅의 시선

아버지에게서 사라진 것은 직업이 아니었다. 표정이었다. 농촌에서 일하던 사람의 얼굴과 공장에서 돌아온 사람의 얼굴이 달랐다. 15세 소년은 그 차이를 설명할 수 없었지만, 그것이 없어졌다는 사실은 알았다. 그가 평생 되찾으려 한 것은 바로 그 표정이었다.

캐시미어를 선택한 것도, 솔로메오를 산 것도, 디자인에서 장식을 걷어낸 것도 같은 이유다. 캐시미어는 서두를 수 없다. 자연이 속도를 정한다. 솔로메오는 800년이 동시에 존재하는 장소다. 그 안에서는 다음 분기를 이유로 사람을 갈아치우는 논리가 작동하지 않는다. 장식 없는 옷은 소재가 말하게 두는 것이고, 소재가 말하면 그것을 만든 손이 보인다. 손이 보이면 사람이 있다는 뜻이다. 그는 아버지에게서 빼앗긴 것을 공장의 논리가 닿지 않는 방식으로 하나씩 돌려놨다.

2025년 매출 16억 달러. 할인하지 않고, 속도를 거부하고, 장인에게 매년 임금을 올렸다. 그렇게 해도 숫자는 따라왔다. 설계도가 명확한 회사는 흔들리지 않는다. 아버지의 표정 하나가 그 설계도였다.

참고 문헌

다른 CEO 인터뷰

자주 묻는 질문

브루넬로 쿠치넬리가 캐시미어 사업을 시작한 계기는 무엇인가요?

15세 때 공장 감독이 아버지에게 소리지르는 장면을 목격하면서 도덕적 존엄과 경제적 존엄을 동시에 지킬 수 있는 일이 존재하는지에 대한 평생의 질문을 갖게 되었습니다. 25세에 친구에게 돈을 빌려 캐시미어 점퍼 6벌을 만들며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브루넬로 쿠치넬리는 왜 밀라노나 로마가 아닌 솔로메오에 본사를 두었나요?

도시 공장이 아버지에게서 빼앗은 속도, 익명성, 감독의 시선과 반대편에 서기 위해서였습니다. 솔로메오는 장인들이 계절의 속도에 맞춰 일하고 점심 후 쉴 수 있는 곳으로, 본사 위치 자체가 회사의 철학을 물리적으로 보여주는 역할을 합니다.

브루넬로 쿠치넬리가 캐시미어를 선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캐시미어는 구조적으로 공장의 효율성 논리가 통하지 않는 소재이기 때문입니다. 염소가 1년에 한 번만 털을 내고 빗질로만 채취해야 하며, 자연이 속도를 정하기 때문에 인간이 편의를 위해 바꿀 수 없어 아버지를 망가뜨린 공장 논리와 정반대편에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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