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성, 품질, 천연 섬유가 우리 순환 설계의 핵심이다.”
— 아일린 피셔(Eileen Fisher), 창업자, Eileen Fisher
일리노이주 데스플레인스. 일곱 남매 중 둘째.
이 두 가지 사실만으로 이미 많은 것이 보인다. 일곱 명의 아이가 한 집에서 자란다는 건, 옷이 한 아이에서 다음 아이로 건너간다는 뜻이다. 새 옷보다 있는 옷을 오래 입히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 환경에서 ‘좋은 옷’의 기준은 단순했다. 다음 아이에게 넘겨줘도 여전히 괜찮은 옷. 유행이 지나도, 한 사람이 실컷 입어도 형태가 무너지지 않는 옷.
아버지가 학비를 낼 수 없다고 했을 때 그녀는 화를 내지 않았다. 남동생을 대학에 보내야 한다고, 그 아이는 나중에 가족을 부양해야 하니까. 그녀는 2013년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속상하지 않았어요. 그때는 그런 시대였으니까.” 대신 식당 웨이트리스로 일하며 일리노이 대학교 학비를 스스로 냈다. 수학을 전공했다가 실내 디자인으로 바꿨다. 졸업 후 뉴욕으로 갔다. 실내 디자이너로, 그래픽 아티스트로 일했다.
패션과는 무관한 사람이었다.
350달러, 네 가지 옷
1984년. 그녀는 350달러를 들고 뉴욕 의류 박람회에 나갔다. 패션 디자인을 배운 적 없는 33세 여성이 테이블 하나를 빌렸다. 내놓은 옷은 네 가지뿐이었다. 복잡한 것이 하나도 없었다. 장식 없는 실루엣, 천연 소재, 계절과 트렌드를 타지 않는 색. 그날 받은 주문이 3000달러였다.
그가 만든 건 패션이 아니었다. 시스템이었다.
실내 디자이너는 공간을 설계한다. 개별 가구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그 공간 안에서 사람이 어떻게 움직이는가를 본다. 그는 옷을 같은 방식으로 봤다. 이 옷들이 서로 어떻게 결합되는가. 여성이 아침에 일어나서 무엇을 입을지 고민하는 시간을 얼마나 줄일 수 있는가. 옷 자체가 아니라 옷을 입는 행위를 설계했다.
단순성은 미학이 아니었다
EILEEN FISHER의 디자인 원칙은 세 가지다. 단순성, 품질, 천연 섬유. 이 세 가지는 지속가능성을 위해 나중에 추가된 것이 아니었다. 창업 첫날부터 있었다.
아마도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일곱 남매가 차례로 입은 옷을 떠올려 보면, 단순성은 미학 이전에 생존의 언어였을 것이다. 장식이 없는 옷은 유행을 타지 않는다. 트렌드를 타지 않는 옷은 5년 뒤에 기증받아도 이상하지 않다. 천연 섬유는 합성 소재보다 세탁을 반복해도 형태가 유지된다. 두 번째, 세 번째 주인이 생겨도 처음과 크게 다르지 않은 상태로.
그 환경에서 자란 사람만이 이 기준을 본능처럼 설계에 녹여낼 수 있었을 것이다.
유행이 되기 전에 설계한 테이크백 구조
EILEEN FISHER Renew 프로그램은 2009년에 시작됐다. 소비자가 입던 옷을 브랜드에 반납하면 수거하는 구조다. 지속가능성이 패션의 마케팅 언어가 되기 훨씬 이전이었다.
2025년 기준으로 수거된 옷은 300만 벌 이상이다. 그 중 230만 벌이 재판매, 기부, 재활용됐다. 이 프로그램이 이 규모까지 성장한 것은 처음부터 구조로 설계됐기 때문이었다. 잘 만들어진 옷, 트렌드 없는 디자인, 천연 소재 — 이 세 가지가 결합되면 기증해도 괜찮은 옷이 된다. 두 번째 주인에게 가도 부끄럽지 않은 상태로.
그녀가 어릴 때 그런 옷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그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만들었을 것이다.
성장 압박이 왔을 때
2012년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이 이 브랜드를 케이스 스터디로 선택했다. 젊은 소비자를 끌어들이지 못한다. 빠르게 변하는 시장에서 관련성이 약해진다. MBA 논리로는 답이 하나다. 리포지셔닝.
EILEEN FISHER는 어느 쪽도 하지 않았다. 소재를 바꾸지 않았다. 가격대를 낮추지 않았다. 원칙을 시장에 맞게 조정하지 않았다. 상장하지 않았고, 벤처 투자를 받지 않았다. 2006년에는 지분의 상당 부분을 직원들에게 돌렸다. 주주가 생기는 순간 원칙이 분기 실적 앞에서 흔들린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소울파파마케팅의 시선
아버지가 학비를 내줄 수 없다고 했을 때 그녀는 화내지 않았다. 시스템이 자신을 위해 설계되지 않았다는 걸 그 전부터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일곱 남매 중 둘째는 그것을 태어날 때부터 배운다.
그래서 직접 설계했다.
웨이트리스로 학비를 냈다. 패션 교육 없이 의류 사업을 시작했다. 350달러로 박람회에 나갔다. 그리고 40년 동안 한 가지 기준을 바꾸지 않았다. 기증해도 괜찮은 옷. 두 번째 주인이 생겨도 처음과 다르지 않은 옷.
그녀가 설계한 건 패션 브랜드가 아니었다. 어릴 때 있었으면 했던 것을 만든 사람의 시스템이었다.
참고 문헌
- EILEEN FISHER: Repositioning the Brand — Harvard Business School
- Designing for Circularity: How EILEEN FISHER Is Building a Scalable Take-Back System — AMI Plastics
- Advancing Measurable Sustainability Performance Through the Higg Index — 3BL Media
- Eileen Fisher — Wikipedia — Wikipedia
다른 CEO 인터뷰
자주 묻는 질문
1984년 뉴욕 의류 박람회에서 아일린 피셔가 선보인 첫 컬렉션의 특징은?
네 가지 옷으로 구성되었으며, 장식 없는 실루엣, 천연 소재, 계절과 트렌드를 타지 않는 색이 특징이었다. 33세 패션 디자인 미경험자가 테이블 하나를 빌려 선보였지만, 첫날 받은 주문은 3000달러에 달했다.
아일린 피셔의 어린 시절이 EILEEN FISHER의 디자인 원칙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
일곱 남매 중 둘째로 자라며 옷이 형제자매 사이를 건너다니는 환경에서 여러 번 입어도 형태가 무너지지 않는 옷의 가치를 체득했다. 이 경험이 창업 첫날부터의 디자인 원칙인 단순성, 품질, 천연 섬유로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2012년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의 성장 압박에 직면했을 때 EILEEN FISHER는 어떤 경영 결정을 내렸나?
젊은 소비자 부족과 시장 관련성 약화를 지적받았지만, 소재·가격대·원칙을 조정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상장하지 않았고 벤처 투자를 받지 않았으며, 2006년부터 지분의 상당 부분을 직원들에게 돌려 주주 압박으로부터 경영 원칙을 보호했다.

강현구(Hyun-gu Kang, Brand & Marketing Director) 소울파파마케팅은 24년도 상반기 1,000억 매출을 기록하고 스킨1004로도 유명한, 크레이버코퍼레이션의 글로벌 K-뷰티 플랫폼 ‘UMMA‘, ‘이데넬‘ 을 비롯해, 올리브영 입점 중인 ‘이퀄베리‘, ‘플르부아‘, ‘셀비엔‘, ‘에이피엘비‘, 다이어트 브랜드 ‘라누보‘, ‘닥터디엣‘, 키즈 브랜드 ‘피카부‘, ‘미래홍삼‘, 애견 관련 ‘멀로‘, ‘초코펫하우스‘, ‘옵스틴‘, 골프웨어 링스로 유명한 엘엑스컴퍼니의 ‘V12‘, 여성 언더웨어 ‘쿠프‘, 30년 전통의 ‘강화도령화문석‘ 등의 수 많은 프리미엄 브랜드와 함께해 오고 있습니다.
